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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회 활동

서문동 상임대표, MBC 대전 시사라디오(생방송 오늘)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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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8회 작성일 19-03-1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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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중계 전화 인터뷰 : 2019. 3.18.(월) 오후6시 10분 / 15분가량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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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1등급으로 상향된 가운데

2등급인 석오 이동녕 선생의 서훈도

상향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100만 명 서명을 목표로 청와대 국민청원도 시작됐는데요.

석오 이동녕선생 선양회 서문동 상임대표께 들어 보겠습니다.

<주요 질문>

앵커 문0. 서문동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답0. 네! 안녕하세요.

석오 이동녕선생 선양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남서울대학교 사무처장 서문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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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1. 유관순 열사에 이어 이동녕 선생의 서훈 등급을 1등급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는

목소리를 내고 계신데요. 일단, 이동녕 선생의 삶과 공적을 살펴보죠.

답 1. 네! 석오 이동녕 선생님은 충남, 천안, 목천의

교육자의 가정에서 태어 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셨고,

청년기(28세)에는 독립협회 참여하여,

“만민공동회”에서 이승만, 이준 등과 함께 개혁을 위한 범 국민운동을 전개하며,

위정자들을 규탄하는 상소문으로 투옥되기도 합니다.

이후, 제국 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하시고, 상동교회에서

김구선생님, 진덕기목사님, 이상재선생님과 함께 기울어가는 국권회복운동을 하셨습니

다.

1905년 11월(37세) 을사늑약이 체결 소식을 듣고

항일 결사대를 조직하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다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국에 알리는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안창호, 양기탁선생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1910년 한일병탄 후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렵게 되자

중국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로에서 이시영, 이회영, 이상룡 선생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시며 초대 교장을 역임하십니다.

잘 아시다 시피,

신흥무관학교는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으로 3,500여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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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하였고, 청산리 전투 등 독립투쟁에서 많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19년 2월 무오대한독립선언을

이시영선생, 김좌진장군, 신채호선생 등 39인이 함께 참여하여

3.1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임시정부 수립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19년 3월 선생님께서는 상해에서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을 세우시고

초대의장 즉 제헌 국회 초대의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 초안을 만드시고,

임시의정원 의장 3번,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4번이나 역임하셨습니다.

당시, 임시정부내에서 여러 어려운 일로 위기가 있을 때마다

충청도인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극복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임시정부내에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나누어져

분산의 위기가 있을 때에도 시사책진회 등의 활동을 통해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임시정부를 잘 이끄신 분이십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암울하였던, 일제 강점기에

국권 회복 및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시며, 교육자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를 1919년부터 1940년 서거하실 때까지 20여년간 실질적으로 이끄신 분이십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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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2. 이동녕 선생이 1940년 중국 사천성 기강에서 영면하신 후

국내 안장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면서요?

답2. 네. 선생님께서는 1940. 3.13. 오후 4시 중국 사천성 기강 임시정부청사 2층에서

72세를 일기로 조국광복의 한을 남긴 채, 영면하시게 됩니다.

이 때 유언으로 민족진영의 대동단결과 광복운동의 일원화를 남기셨습니다.

그 당시, “임시정부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셨습니다.

1945년 우리나라 광복 후 김구선생님과 임정요원들이 먼저 귀국하게 되십니다.

그 후 3년이 지나서 1948년 백범 김구선생님께서

선생님의 국내 봉환을 주선하셔서 선생님을 국내로 봉환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꿈에도 그리던 고국을 백골이 되어서,

그것도 해방이 된지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고국으로 돌아오신 겁니다.

봉환 후 “사회장”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의 예우로 “효창원:에 안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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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3.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에 민주주의의 초석까지 다진 분이 바로 이동녕선생인데,

왜 2등급 서훈이 내려지게 됐나요?

답3., 이동녕 선생님은 임시정부를 조직하시고, 운영하신 분이십니다.

- 3 -

3차례의 임시의정원 의장 과 임시정부 주석을 4차례 역임하시며

임시정부를 지키신 분이십니다.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으로 즉, 제헌국회의장으로

29인의 전국 대표와 함께 1919년 4월 10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선포하시면서

우리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 으로 정하시고 최초로 공식화 된 것입니다.

또한, 임시헌법에서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제”를

국가의 통치체제로 선포하시어 우리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놓으신 것입니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를 수여시,

선생님을 2등급 “ 대통령장”으로 결정하여 추서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임시정부를 유지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하셨던

이동녕 선생님의 독립정신이나, 사상, 업적, 영향력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였고,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하였고, 독립운동 업적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였다고 봅니

다.

김구 선생님께서도 백범일기에서

가장 존경하는 한분으로 석오 이동녕 선생님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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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4. 그만큼 이동녕 선생의 서훈 등급을 1등급으로 상향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답 4. 네,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번창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등불로 임시정부를 지키셨습니다.

이동녕 선생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정하고

“민주공화제”와 삼권분립을 규정하는 등 의회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던 분이시며

일본의 중국침략에 따라 임시정부청사를 10여곳으로 이동하며

20여년 동안 통합 임시정부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민족의 지도자이시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건국의 아버지로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지도자로

평생을 개회와 독립투쟁으로 일관하신 선생님의 명성과 업적을 널리 알려랴 합니다.

1940년 영면하실 때까지 일제의 피박 과 각종 회유에도 흐트러짐이 없이

대힌민국 임시정부와 함께하시며 독립운동을 막후에서 지도 하신분으로

특히, 이봉창의거, 윤봉길의거를 계획하고 김구선생님으로 하여금 실행하게 하셨습니

다.

덧붙인다면. 서훈 등급 상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선생님과 독립운동후손들에 대한 조그만 고마움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동녕 선생님을 우리 후손들에게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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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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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5. 이동녕 선생의 서훈 등급 상향을 촉구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계시죠?

답5. 네! 저희들은 3.1운동 100주년, 임시의정원 및 임시정부 개원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동녕선생님께 서훈 1등급으로 추서해야 한다고 봅니다.

석오 이동녕선생 선양회(상임대표 서문동)에서는

나라사랑 국민운동본부(총재 권영욱, 본부장 염남훈)와 함께

“ 석오 이동녕선생 서훈을 1등급으로 상향시켜 주세요.” 라는 제목으로

지난 3월 11일부터 4월 10일까지 한 달간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나라사랑 한마음 프로젝트로

“내가 대한민국이다.” 라는 캠폐인을 전개하며,

서훈 1등급 상향 100만인 서명을 목표로 현재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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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6. 유관순 열사의 경우에는 상훈법 개정이 논의됐다가 결국 1등급 서훈이 추가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는데요. 이동녕 선생도 1등급 서훈이 추가되는 방향을 원하시는 건가요?

답6. 선생님의 서훈이 추가되는 방향도 있지만,

선생님의 행적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통해 등급이 상향되는 것을 원합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동녕 선생님은

우리 독립운동사, 임시정부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이런 업적이 저평가 되어 서훈 등급이 잘못 추서되었다면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동녕 선생님은 초대 국회의장이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국회에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석오 이동녕 선생 선양회에서는 업적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함께 서훈 추가에도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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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7. 정부에서 어떤 기준에서 재검토가 이뤄졌으면 하십니까?

답7. 우선 석오 이동녕 선생님의 업적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1963년 서훈 추서이후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추서 당시에 업적에서 노친 부분이 있는가 하는 것을 면밀히 검토

해야 할 것입니다 노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한 서훈이 추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정통성 측면에서 국호를 정하시고, 통치 체제를 정하신 점,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키신 점, 여러 부분의 업적에 대해 제대로 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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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8. 이런 가운데 이동녕 선생의 표준영정의 필요성도 제기하셨다고요?

답8. 네, 선생님의 영정이나, 융상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효창원의 선생님 영정과,

천안 목천 이동녕기념관 입구에 세워져있는 흉상과 영정!

선생님 생가터에 입구에 세워진 동상,

국회 로텐더 홀에 있는 흉상 등이 다 다르다는 의견 입니다.

어디를 봐도 이동녕선생하고는 전혀 닮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지역 주변에서 많이 듣고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추모제를 거행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표준 영정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표준영정이 없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금년 10월에 선생님의 동상을 세우기 위하여 천안시에서 추진중에 있는데,

이번에는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흉상이나 동상이 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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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9. 앞으로 이동녕 선생의 서훈 등급 상향을 위해 석오이동녕선생선양회에서는

어떤 행보에 나설 계획인가요?

답8. 네! 저희 석오 이동녕선생 선양회(상임대표 서문동)에서는

나라사랑 국민운동본부(총재 권영욱, 본부장 염남훈)와 함께

선생님의 서훈 1등급상향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선생님을 알리겠습니다.

우선, 지역에서 각 기관과 시민단체, 교육기관, 학교, 학생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제가 회장으로 있는 “전국대학교 사무, 총무, 관리, 재무처(국) 장 협의회” 와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통하여 이동녕선생님 알리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입니

다.

또한, 제가 사무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서울대학교 선양회의 일환으로

“이동녕의 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연구소”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남서울대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선생님에 대하여 연구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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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10. 끝으로 이동녕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후세대가

어떻게 기렸으면 하시는지, 한 말씀 해주시죠.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정해진 100살이 되는 해인 것이지요.

일제의 침략하에서 의병들, 독립군들, 광복군들 수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을 지키려 자기의 목숨을 던지셨습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님, 백범 김구 선생님, 약산 김원봉 선생님, 이시영 선생님 등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나라가 국난에 처할 때 국권회복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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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을 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을 결코 잊어서도, 아무리 사소한 독립운동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

다.

우리의 뿌리가 이 분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의 후세대들에게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나라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100년이 흘렸지만, 아직도 독립운동을 위해 이름없

이 만주에서 상해에서 목숨을 바치신 분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앞으로, 이런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분들과

그 유족들께 많은 관심으로 함께 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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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석오이동녕선생선양회 서문동 상임대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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